5살 아이 동생 질투를 보면서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당황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는 첫째와 부모 둘이서 생활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동생이 생기고 나니 집안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둘로 나뉘었다.
아기는 계속 안아줘야 하고, 먹여야 하고, 씻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첫째가 예전처럼 엄마 아빠의 관심을 독차지하기는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첫째도 동생을 예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도 나타났다.
동생이 자기 장난감에 다가오면 경계했고, 밀치기도 했다.
가끔은 때리기도 했다.
엄마가 동생을 안고 있으면 자기도 안아달라고 했다.
그럴 때는 오히려 동생을 아빠가 안으라고 하기도 한다.
“동생은 아빠가 안아.”
처음에는 웃기기도 했다.
그런데 계속 보다 보니 단순히 동생이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5살 아이 동생 질투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첫째는 동생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생을 굉장히 예뻐한다.
동생이 간지럼을 타서 크게 웃거나 엄마 아빠가 뭔가를 해서 웃는 모습을 보면 꼭 따라 한다.
동생을 웃게 해주려고 하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동생에게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안아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형이라는 게 신기하다.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동생을 예뻐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자기 장난감을 나눠주고 싶은 것은 아니다.
동생을 사랑하는 것과 내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어른인 나도 내가 아끼는 물건을 누군가가 마음대로 만지면 싫을 것 같다.
그런데 다섯 살 아이에게는 “동생이니까 양보해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이의 행동보다 그 마음을 먼저 생각해보게 됐다
첫째가 동생을 밀치거나 장난감을 뺏으려고 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일단 행동부터 보게 된다.
“동생한테 그러면 안 돼.”
“때리면 안 돼.”
물론 위험한 행동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행동만 보고 아이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동생이 내 장난감을 만져서 싫었던 걸까.
엄마가 동생을 안고 있어서 서운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지금 나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했던 걸까.
얼마 전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면서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어릴 때는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책이었는데, 30대 중반에 아빠가 되어 다시 읽으니 아이의 행동보다 그 안에 있는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게 느껴졌다.
아이를 어른의 기준으로만 해석하면 “왜 동생에게 양보하지 못하지?”가 먼저 보인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아끼는 걸 지키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마음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의 행동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진다.
동생은 형을 정말 좋아한다
재미있는 건 둘째가 형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이다.
형이 움직이면 따라가고, 형이 하는 걸 보면 관심을 보인다.
첫째가 장난을 치면 둘째가 웃고, 그러면 첫째는 더 신나서 동생을 웃기려고 한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형제가 된 느낌이 난다.
아직 둘째가 어려서 제대로 같이 놀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건 보인다.
그래서 더 어렵기도 하다.
첫째가 동생을 밀치거나 때리면 당연히 제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첫째의 마음까지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동생이니까 무조건 잘해줘야 해.”
이렇게 말하는 건 쉬운데, 그렇게 해서 아이가 동생을 좋아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첫째에게 괜히 화냈던 날들이 있었다
사실 동생이 태어나고 가장 반성했던 부분이 있다.
둘째를 키우면서 스트레스가 점점 쌓였다.
아기는 계속 신경 써야 하고, 잠도 부족하고,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부모도 여유가 없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첫째가 뭔가 잘못하면 평소보다 훨씬 크게 화를 내는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첫째가 그날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지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화를 가장 가까이 있던 첫째에게 풀었던 것 같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첫째 입장에서는 동생이 생긴 것만으로도 갑자기 달라진 게 많았을 텐데, 부모까지 예전보다 자신에게 화를 많이 내는 것처럼 느꼈을 수도 있으니까.
그걸 깨닫고 나서는 조금 더 의식적으로 첫째를 바라보려고 했다.
그래서 동생 육아에 억지로 참여시키지는 않는다
주변에서는 첫째에게 동생 기저귀를 가져오게 하거나, 동생을 돌보는 일에 참여시키는 방법도 이야기한다.
그런 방법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굳이 첫째에게 동생 육아를 시키지는 않고 있다.
첫째는 이미 형이다.
굳이 “형이니까 동생을 도와줘야 한다”는 역할까지 만들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첫째가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신경 쓰려고 한다.
동생을 돌보면서도 첫째가 이야기하면 들어주고, 잘한 일이 있으면 칭찬해준다.
사소한 일이라도 먼저 알아봐주려고 한다.
예전보다 더 챙겨주려고 하는 편이다.
넛지육아를 읽고 첫째를 대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얼마 전 읽은 넛지육아의 영향도 있다.
(세 살 네 살 넛지육아 후기 | 아이를 바꾸기보다 부모가 먼저)
넛지육아를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했던 건 아이를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무조건 끌고 가는 것보다, 아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물론 동생을 때리거나 밀치는 행동은 그냥 놔둘 수 없다.
하지만 그 행동을 막는 것과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동생 때리면 안 돼.”
라고 말하면서도
“동생이 네 장난감을 만져서 싫었구나.”
라고 말해줄 수 있다.
행동은 제한하되 감정까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첫째가 동생을 사랑해야 한다고 강요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동생과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지켜보려고 한다.
실제로 첫째는 동생을 웃겨주는 걸 좋아한다.
그럴 때는 굳이 “형이니까 잘해야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동생이 형 때문에 웃네.”
하고 함께 웃어준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첫째가 동생보다 부모의 관심을 원하는 것 같다
5살 아이 동생 질투를 지켜보면서 느낀 건, 첫째가 반드시 동생을 질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동생 때문에 줄어든 부모의 관심을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에 가까울 수도 있다.
엄마가 동생을 안고 있으면 자기를 안아달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동생이 미워서라기보다
“나도 엄마 아빠에게 중요한 아이야.”
라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그럴 때는 가능하면 안아준다.
동생을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말로라도 반응해준다.
“아빠가 안아줄게.”
“조금만 기다려.”
이렇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첫째가 조금 진정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이때 필요한 건 동생보다 더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첫째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사랑하면서도 질투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예전에는 조금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동생을 예뻐하면 질투하지 않는 것이고, 동생을 밀치면 질투하는 것이라고.
그런데 실제로 두 아이를 키워보니 그렇게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첫째는 동생을 사랑한다.
동시에 동생이 자기 장난감을 만지는 건 싫다.
동생이 웃으면 좋아한다.
동시에 엄마가 동생을 안고 있는 건 싫을 수 있다.
동생을 안아주면서도 자기도 안아달라고 한다.
이게 다 같이 존재한다.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며 아이의 내면을 생각했던 것도 결국 이런 부분과 연결되는 것 같다.
아이의 행동 하나만 보고 그 아이를 판단하기보다는 그 행동 뒤에 어떤 마음이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
부모에게는 당연한 일처럼 보이는 것도 아이에게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부모가 먼저 첫째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부모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어린아이에게 많이 쏠린다.
당장 손이 더 많이 가는 아이가 둘째이기 때문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오히려 첫째에게 조금 더 의식적으로 관심을 주려고 한다.
칭찬할 일이 있으면 바로 칭찬하고, 이야기를 하면 들어주고, 같이 있을 때는 잠깐이라도 첫째에게 집중하려고 한다.
거창한 방법은 아니다.
그냥 예전보다 첫째를 한 번 더 바라보는 정도다.
그리고 동생 육아에 억지로 참여시키지도 않는다.
“형이니까 도와줘.”
라는 말을 자주 하기보다, 첫째가 스스로 동생에게 관심을 보일 때 그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려고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첫째도 조금씩 달라진다.
동생을 챙기기도 하고, 동생이 웃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지금은 완벽하게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5살 아이 동생 질투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앞으로도 자기 장난감을 지키려고 할 것이고,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할 것이다.
동생과 싸울 수도 있다.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형제가 함께 자라면서 서로 부딪히는 과정도 필요할 테니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갈등을 없애주는 것보다는, 위험한 행동은 막아주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첫째가 부모에게서 밀려났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
지금은 그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마무리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 육아가 두 배가 됐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아이가 한 명 늘어난 것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첫째를 바라보는 부모의 태도도 달라져야 했다.
처음에는 첫째가 동생에게 잘해주기를 바랐다.
동생을 예뻐하고, 양보하고, 형답게 행동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첫째도 아직 다섯 살이다.
동생을 사랑할 수도 있고, 동시에 질투할 수도 있다.
동생을 안아주고 싶을 수도 있고, 내 장난감은 지키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런 마음이 같이 있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첫째에게 형이라는 역할을 너무 강조하기보다 그냥 첫째도 여전히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것에 더 신경 쓰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첫째에게 괜히 화냈던 순간들도 많았다.
그건 아직도 미안하다.
앞으로도 실수는 하겠지만, 적어도 그때보다 조금 더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동생을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생이 생긴 뒤에도 첫째의 자리를 잊지 않는 것.
지금 우리 집에서는 그게 가장 중요한 육아 중 하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