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이에게 선택권을 줘보니, 부모가 정해주는 것보다 편해졌다

5살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부모와 아이의 모습

5살 아이 선택권, 부모가 정해주는 것보다 편해졌다

5살 아이 선택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건 아이와 하루에도 몇 번씩 실랑이를 하면서부터였다.

5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밥을 먹을 때도 그렇고, 씻을 때도 그렇고, 이제 뭘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하고 싶어 한다.

예전에는 그냥 내가 정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 밥 먹어.”
“이제 씻어.”
“이거부터 해.”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한 이야기다. 하루 일과가 정해져 있으니 아이가 따라오기만 하면 편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오히려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을 부모가 정해주더라도 그 안에서 아이가 직접 선택할 수 있게 해주면 생각보다 실랑이가 줄어들 때가 있었다.

5살 아이는 생각보다 자기 생각이 분명하다

5살쯤 되니 아이가 원하는 것이 꽤 분명해졌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하기 싫은지 표현하는 것도 예전보다 확실해졌다.

부모 입장에서는 가끔 피곤하다.

예전에는 그냥 입혀주고 먹여주면 됐던 일들이 이제는 하나하나 의견을 묻고 조율해야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아이가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 판단하는 힘도 생기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문제는 부모와 아이의 선택이 항상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이는 계속 놀고 싶고 부모는 씻겨야 한다.

아이는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싶고 부모는 밥을 먹였으면 한다.

아이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부모는 다음 일정을 생각하고 있다.

이럴 때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맡길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조금씩 바꿔본 것은 선택의 범위였다.

부모가 정하되, 아이가 고르게 해보기

선택권을 준다고 해서 아이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가 큰 틀을 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식에 가깝다.

예를 들어 씻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씻을지 말지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세수할래, 양치부터 할래?”

처럼 물어보는 것이다.

결국 해야 하는 일은 같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가 시키는 일을 무조건 따라가는 것과 자신이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이것도 만능은 아니다.

선택지를 줬는데도 싫다고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다시 선택지를 늘려가며 설득하기보다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선택권을 준다는 것과 아이의 요구를 모두 받아준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넛지육아를 읽고 조금 달라진 부분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예전에 읽었던 육아책의 영향도 있었다.

(세 살 네 살 넛지육아 후기 | 아이를 바꾸기보다 부모가 먼저)

책을 읽기 전에는 아이가 말을 잘 듣게 만드는 방법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읽고 나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는지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이를 원하는 방향으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것보다, 아이가 조금 더 쉽게 원하는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책에서 본 내용을 실제 육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이마다 다르고 상황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거창하게 육아법을 실천한다기보다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해보는 정도다.

“이거 할래, 저거 할래?”

아이에게 선택할 기회를 조금 더 주는 것.

그 정도만으로도 부모와 아이가 부딪히는 횟수가 조금 줄어드는 순간이 있었다.

선택권을 줬다고 아이가 항상 말을 듣는 것은 아니다

이 부분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인터넷이나 육아서를 보다 보면 어떤 방법을 사용하면 아이가 갑자기 달라질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좋은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 아이와 싸울 일이 줄어들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날은 선택권을 줘도 싫다고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짜증을 낸다.

부모가 차분하게 이야기해도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방법을 잘못 쓰고 있나?”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이도 기분이 있는 사람이고 부모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은 잘되고 어떤 날은 안 된다.

중요한 건 한 가지 방법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선택권을 줄 때 지키려고 하는 것

내가 아이에게 선택권을 줄 때는 몇 가지 기준을 생각하려고 한다.

첫 번째는 선택지가 너무 많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5살 아이에게 열 가지를 고르게 하면 선택이 아니라 또 다른 고민이 될 수 있다.

두 가지 정도면 충분하다.

“이거 할래, 저거 할래?”

두 번째는 선택할 수 없는 것은 처음부터 묻지 않는 것이다.

오늘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오늘 유치원 갈래, 안 갈래?”

라고 물어보면 안 된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부모가 정해야 할 부분은 부모가 정하면 된다.

대신 그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찾아주는 것이다.

“유치원 가기 전에 어떤 양말 신을래?”

이런 식이다.

세 번째는 선택한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다.

부모가 선택지를 줘놓고 아이가 고른 뒤 다시 부모 마음대로 바꾼다면 선택권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안전이나 건강처럼 반드시 부모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은 예외다.

결국 선택권은 아이에게 모든 결정권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결정해볼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에 가깝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아이의 행동만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다는 것이다.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왜 갑자기 화를 내는지, 왜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는지.

그런데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조금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아이에게도 자기 생각이 있고, 자기 기분이 있고,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최근 다시 읽었던 책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어린 왕자 독후감 | 30대 아빠가 다시 읽어보니)

어른이 되면서 아이의 행동을 어른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지만,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한 번쯤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선택권을 주는 것도 결국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고 있다.

“왜 말을 안 듣지?”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가 지금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건 뭘까?”

라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것이다.

부모가 조금 편해지는 방법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아이를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보면서 느낀 건 부모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서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작은 부분을 아이에게 넘겨주면 부모가 계속 통제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도 자기 선택을 했다는 느낌이 있고, 부모도 모든 것을 하나하나 지시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여전히 힘든 날은 있다.

아이 둘을 키우다 보면 계획대로 되는 날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이 더 많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모든 것을 부모가 정하고 아이가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게 됐다.

5살 아이를 키우면서 배우는 중이다

5살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은 대단한 육아법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효과가 있고 어떤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가 조금씩 자기 생각을 갖기 시작하는 시기라면 부모가 모든 것을 결정해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선택해볼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정해야 하는 큰 틀은 부모가 정하고,

그 안에서 아이가 고를 수 있는 작은 부분은 아이에게 맡기는 것.

지금 내가 생각하는 선택권은 그 정도다.

육아를 하면서 정답을 하나씩 찾아가는 것보다는 이런 작은 방법들을 하나씩 시도해보고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게 현실적인 것 같다.

오늘도 아이와 무언가를 두고 실랑이를 하게 된다면 한 번쯤 생각해볼 것 같다.

“내가 지금 꼭 정해줘야 하는 일일까?”

그렇지 않다면 아이에게 선택할 기회를 하나 정도는 남겨주는 것도 괜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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