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었다.
왜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어 한국 영화 흥행 상위권에 오를 정도였을까.
그렇다고 형편없는 영화였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의 뒷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가볍게 볼 만한 시대극이라는 기준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히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가 괜찮다는 것과 천만 관객을 동원할 만큼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내가 느낀 영화의 장점과 아쉬움, 그리고 이 작품의 흥행을 보며 떠올린 생각을 기록해 본다.
(10월 감명록|브레이킹 배드 시즌 4부터 책 3권까지)
왕과 사는 남자 후기: 역사의 뒷이야기를 보는 재미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우리가 알고 있던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접한 사건은 대체로 결과를 중심으로 정리된다. 누가 무엇을 했고,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남았는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 사이에 있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관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따라가면서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도 이런 부분은 괜찮았다. 역사의 뒷이야기를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 시대극이라는 장르가 주는 재미도 있었다.
영화의 전개 역시 가볍게 감상할 만한 작품이라는 기준에서는 크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묵직한 역사극이나 완성도 높은 걸작을 기대하지 않았다면 무난하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적어도 재미없다는 이유만으로 혹평할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고 싶은 부분은 연기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작품의 이야기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역량은 인정할 만했다.
영화를 평가할 때 연기와 각본, 연출, 이야기의 완성도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해서 작품의 모든 요소가 뛰어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야기의 일부가 아쉽더라도 배우들의 연기까지 낮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왕과 사는 남자》는 내게 그런 영화였다.
연기는 분명히 좋았다. 역사적 소재를 활용한 이야기에도 볼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장점만으로 영화가 한국 영화 흥행 상위권에 오를 정도의 작품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하게 칭찬할 수 있는 부분은 배우들의 연기였다.
신파를 싫어한다면서 신파 영화는 흥행한다
요즘 한국 관객들의 영화 평가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신파다.
감정을 지나치게 끌어올리거나, 관객을 울리기 위해 특정한 장면과 상황을 반복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감동을 느끼는 것과 영화가 감동을 유도한다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감정에 가깝고, 후자는 영화가 특정한 감정을 느끼도록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신파적인 요소가 과하게 들어간 영화는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를 보면서 흥미롭게 느낀 부분이 있었다. 신파적인 요소가 적지 않은 영화임에도 천만 관객을 넘어서는 흥행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물론 신파가 들어갔다고 해서 영화가 나쁜 것은 아니다. 감정을 자극하는 연출도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면 충분히 효과적일 수 있다. 관객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도 없다.
다만 평소에는 신파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관객들이 신파적인 요소가 강한 영화에는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말하는 신파와 실제로 감동을 느끼는 지점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 걸까. 아니면 작품의 분위기와 사회적인 반응에 따라 같은 요소도 다르게 받아들이는 걸까.
이 부분은 영화 자체의 평가와는 별개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었다.
SNS의 입소문은 영화 흥행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을 보면서 SNS의 영향력도 생각하게 됐다.
요즘은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상을 온라인에서 공유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영화가 개봉하면 관람 후기와 추천 글, 짧은 영상들이 빠르게 퍼진다.
특히 감정을 자극하는 문구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쉽다. 영화가 얼마나 슬펐는지, 어느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는지에 관한 후기가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반응은 다른 관객의 선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에도 이런 입소문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SNS에서 눈물과 감동을 강조하는 후기가 퍼지고, 그 반응이 하나의 열풍처럼 번지면서 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흥행에 SNS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면 별도의 자료가 필요하다. 입소문만으로 천만 관객을 설명할 수도 없다. 작품 자체의 매력과 배우들의 연기, 배급과 홍보, 관객들의 취향 등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SNS에서 형성된 분위기가 관객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는 점은 분명히 생각해 볼 만하다.
예전에는 영화를 선택할 때 주변 사람의 추천이나 언론의 평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수많은 개인의 감상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한 작품에 대한 반응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관람을 결정하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영화의 완성도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영화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도 흥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셈이다.
왕과 사는 남자 후기: 괜찮은 영화와 천만 영화는 다르다
결론적으로 《왕과 사는 남자》를 형편없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역사의 뒷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전개 역시 가볍게 감상할 만한 영화라는 기준에서는 무난했다.
그런데도 천만 관객을 넘어 한국 영화 흥행 상위권에 오른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흥행 성적과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흥행은 관객들이 실제로 영화를 선택한 결과다. 반면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각자가 영화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배우들의 연기에 감동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역사적 소재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은 신파적인 연출을 통해 감정적으로 깊이 몰입할 수도 있다.
내가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고 해서 다른 관객들의 감상이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좋은 연기를 보여준 괜찮은 영화와 천만 관객을 넘어 흥행 상위권에 오를 만한 영화 사이에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생각이기도 하다.
마무리
《왕과 사는 남자》는 장점과 아쉬움이 비교적 분명하게 남은 영화였다.
역사의 뒷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고,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반면 신파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점과 SNS의 입소문이 흥행에 미쳤을 가능성은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남겼다.
재미없다는 혹평을 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천만 관객이라는 기록과 한국 영화 흥행 상위권이라는 성적까지 생각하면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결국 흥행 성적은 흥행 성적이고, 영화에 대한 평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번 왕과 사는 남자 후기는 그 차이를 기록해 두는 글이다. 다른 사람의 감상과 내 감상이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